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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침묵의 살인자 ‘라돈’, 당신 아이를 노린다

전국 초·중·고교 실내공기질 측정 결과 입수…408개 초·중·고교 1급 발암물질 기준치 초과400개가 넘는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실내 라돈(Radon) 농도가 권고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라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폐암 발병의 주요 원인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토양이나 암석 등에 존재하는 자연방사성 가스인 라돈은 건물 바닥이나 벽의 갈라진 틈을 통해 실내로 유입된다. 밀폐된 공간에서 고농도 라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폐암 등에 걸릴 수 있어 ‘침묵의 살인자’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강건욱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라돈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는 의학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이미 널리 인정받고 있다”면서도 “무색·무취한 특성 탓에 아직 국내에는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라돈은 폐암을 유발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라돈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라돈은 어린 학생들 가까이에 있었다. 시사저널이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교육부로부터 단독 입수한 ‘2017년 학교 실내공기질 측정 결과’ 자료에 따르면, 전국 408개 초·중·고교의 실내 라돈 농도가 권고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총 조사 대상 1만350여 곳 중 4%에 달하는 수치다. 라돈 농도가 기준치의 10배를 훌쩍 뛰어넘은 학교도 발견됐는데, 상당수 학교가 초등학교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초·중·고교의 실내 라돈 수치가 조사돼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는 2016년 9월1일 개정된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라 2017년 사실상 최초로 전국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라돈 점검에 나섰다. 라돈은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에 깔리는 특성이 있어 기존에는 학생들이 거의 활동하지 않는 지하 1층이 측정 대상이었다. 지난해부터 지상 1층 이하 교실로 점검 대상이 확대됐다. 즉 제대로 된 학교의 라돈 점검은 작년에야 비로소 이뤄진 것이다. 

환경부는 현재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에 의거해 학교 실내 라돈 기준치를 148베크렐(Bq)/㎥로 정하고 있다. Bq/㎥은 공기 중 라돈의 농도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위로, 148Bq/㎥이란 공기 1㎥ 중에 라돈 원자가 148개 떠다닌다는 뜻이다. 148Bq/㎥은 미국의 기준을 준용한 것이다. 독일은 100Bq/㎥, 영국·캐나다·스웨덴은 200Bq/㎥ 이하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강원·충청·전북 순으로 고농도 라돈 검출

전국에서 가장 많이 라돈 권고 기준치를 초과한 학교가 있는 곳으로 조사된 지역은 강원도였다. 강원 지역 조사 대상 673개 학교 중 208개(30.9%) 학교에서 148Bq/㎥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 충남(104개·14.1%), 충북(53개·10.7%) 등에서도 라돈 권고 기준치를 초과한 학교가 상당수 조사됐다. 전북과 전남은 각각 19개(2.3%), 5개(0.5%)로 나타났다. 경북(8개), 대전(6개), 경기(4개), 서울(1개) 등이 뒤를 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이 기준치를 초과한 학교 역시 강원 태백에 위치한 미동초등학교였다. 2034.3Bq/㎥로 기준치의 14배에 달했다. 두 번째로 가장 많은 라돈이 검출된 학교는 전북 김제 금산초(1801Bq/㎥)였다. 강원 태백 통리초(1793.3Bq/㎥), 전북 장수 계남초(1657.6Bq/㎥), 강원 춘천 당림초(1485.6Bq/㎥), 전북 진안 송풍초·용담중(같은 곳에 위치·1431.9Bq/㎥) 등도 기준치의 10배에 달하는 라돈이 검출됐다. 강원도에 위치한 한전초(1285.3Bq/㎥), 태서초(1198.2Bq/㎥), 화천초 논미분교(1029.1Bq/㎥) 등도 상당히 높은 수치의 라돈이 검출됐다. 전북 순창여중(1013.8Bq/㎥), 강원 월학초(1010Bq/㎥)에서도 1000Bq/㎥ 이상의 라돈이 나왔다.

지역별로 강원, 충청, 전북 등에서 상대적으로 고농도 라돈이 검출된 이유는 이들 지역이 라돈 가스를 배출하는 화강암 지반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또 화강암 지반대에서 나온 토양과 암석을 건축자재로 써 라돈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다. 목재로 된 건축 자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교육부는 “교실 바닥이 목재 재질인 학교에서 상대적으로 고농도 라돈이 배출되고 있다”며 “토양에서 발생한 라돈이 교실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 교육부 조사에서 주목할 점은 고농도 라돈이 검출된 대다수 학교가 어린 학생들이 모여 있는 초등학교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기준치를 넘긴 전체 학교 408개 중 절반이 넘는 256개 학교가 초등학교다. 강원(140개), 충남(55개), 충북(36개), 전북(9개), 전남(5개), 대전(4개), 경북(4개), 경기(2개), 서울(1개) 등으로 전체의 62.7%에 달했다

초등학교 라돈 주의보…“어릴수록 라돈에 취약”

전국에서 가장 많이 기준치를 초과한 학교도 초등학교(미동초)다. 1000Bq/㎥ 이상의 고농도 라돈이 검출된 12개 학교 중 무려 10개(83.3%)가 초등학교였다. 유치원도 고농도 라돈에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전북 김제 금산초와 진안의 송풍초는 교내 유치원에서 라돈 농도를 측정했는데, 그 결과가 각각 1801Bq/㎥, 1431.9Bq/㎥로 나왔다. 기준치보다 많게는 12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전문가들은 라돈에 상대적으로 저연령대가 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강건욱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어린 학생일수록 라돈 노출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 라돈 노출의 피해 가능성은 더 높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라돈에 대한 교육부의 안이한 인식이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 교실에 대한 라돈 농도 기준치는 148Bq/㎥인데, 600Bq/㎥을 넘길 경우에만 시간대별로 정밀 점검하는 2차 측정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설개선 등 저감 조치도 600Bq/㎥이 넘을 때만 실시한다. 전문가들은 라돈 농도 600Bq/㎥이 하루 담배 두 갑 정도를 피우는 흡연자의 폐암 발생 위험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차 측정 시 600Bq/㎥ 이상 나오는 경우에만 실제 학생들이 생활하는 시간대에 라돈 농도가 기준치인 148Bq/㎥을 넘긴다는 주장이다. 1차 측정 방식은 라돈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시료 채취기를 90일 이상 놓고 그 평균값을 낸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 평균값에는 학생들이 없는 밤이나 휴일의 라돈 농도까지 가중돼 평가된다”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평균값이 600Bq/㎥ 이상 나와야 실제 학생들이 있는 시간대에 라돈 농도가 148Bq/㎥ 정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현재의 라돈 측정방식 문제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해명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조승연 연세대 자연방사능 라돈안전센터장·환경보건센터장(환경공학과 교수)은 “라돈은 1급 발암물질로 지금 기준치인 148Bq/㎥이 담배 8개비를 흡연하는 정도의 위험성을 갖고 있는데 교육부의 기준이 너무 느슨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강건욱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도 “시설개선 등 저감조치의 기준인 600Bq/㎥이란 수치는 꽤 느슨하다. 건강을 기준으로 했다기보다는 예산 등 경제적인 면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민관 합동 실태조사 등을 통해 이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